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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주제가 과연 ‘이만희’인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①
2007년 01월 26일 (금) 07:57:45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서론과 요한계시록의 주제

도대체 이만희측(신천지교회, 시온기독교신학원) 단체가 이단으로 규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왜 이만희측에 빠지게 되는가? 최근 들어 이러한 질문들이 더욱 생각난다. 또한 그에 대한 답의 필요도 더욱 절실해진다.

이만희측과 관련한 상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그 한 예다. 피해 보고도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큰 틀에서 본다면 이만희측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원인이라 꼽을 수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상대적으로 미흡한 대처도 마찬가지다.

이만희 씨가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통합/1995/이단, 합동/1995/신학적 비판 가치없는 집단, 고신/2005/이단, 기성/1999/이단 등). 이 씨의 대표적인 이단 교리는 ‘교주 이만희=보혜사’라는 것이다. 소속 신도, 이탈자들의 고백 그리고 관련된 자료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누가 봐도 이단 교리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조금은 유치한 교리라 할 수 있다. 정통교회 신앙인은 둘째치고 비신앙인에게조차 처음부터 ‘이만희=보혜사’라는 교리를 들고 접근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나 ‘Yes’라는 답이 나올까? 필자는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이단 교리의 특징인 ‘교주의 신격화’ 등이 그 교리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이단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공부’라는 형식으로 계속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 교리가 성경의 ‘요한계시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만희 씨가 자신의 교리서 ‘요한계시록 해설집’이라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만희=보혜사’라는 교리가 소위 ‘성경적’인 것임을 의도하려고 한 것이다.

한국교회 성도가 이 씨측에 미혹 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지 성경을 공부하고자 한 순수한 마음의 성도들이 많다. 그들에게 요한계시록은 무조건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어 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그에 대한 설교를 상대적으로 적게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최근에는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교회 강단에서 또는 성경공부 모임에서 요한계시록은 역시 우선순위에 밀려나기 일쑤다. 특히, ‘이기는 자’, ‘두 감람나무’, ‘십사만사천’ 등의 본문에 나타나는 용어가 ‘요한계시록은 어렵다’는 이미지를 만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책만큼 호기심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만희측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오용하며 나타난 이단자들은 바로 이러한 성도들의 마음을 역이용한 셈이다. 과연 누가 처음부터 “나는 ‘이만희=보혜사’ 교리를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하며 이 씨측을 찾았겠는가?

이 씨는 기존의 ‘요한계시록 해설서’를 보완해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이라는 교리서를 출판해 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띤다. 책 겉표지 저자 이름 자리에 ‘보혜사 · 이만희’라고 금박으로 인쇄해 넣은 부분이다. 책 안쪽에도 동일하게 인쇄했다. 인쇄상의 실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씨는 위의 책 외에 요한계시록을 해설한다는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썼다. <계시록의 진상 2>(안양: 도서출판 신천지, 1988)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만희 씨의 교리서를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 위 질문들에 대한 핵심적인 답일 것이다. 이 씨의 용어를 빌려 사용하자면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제대로 따져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씨 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단 교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단 단체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단 교리 분석은 역시 한국교회가 이단을 대처하는 데 주춧돌의 역할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그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져 가고 있다. 이는 이 씨의 이단성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이 씨측으로부터 한국교회를 보다 세밀히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만희 교리서격인 <요한계시록 실상>
본고의 목적

본고의 목적은 이만희 씨의 이단교리 비판 및 올바른 성경적인 답을 제시하는 데 있다.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이만희 씨의 비성경적인 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내용을 성경 본문을 가지고 밝혀보고자 한 것이다.

본 연구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한국교회 대표적인 이단 중 하나인 이만희 씨의 교리를 직접 비판, 분석해 본다는 것이다. 물론 초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만희 씨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 중 <천국 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위에서 언급한 것)이라는 책에 한정할 것이다. 이 책이 이만희 씨의 교리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씨가 이전에 기록한 <계시록의 진상 2>도 비교 사용할 것이다. 또한 유사한 다른 이단 교리 서적들도 필요에 따라 참고하려고 한다.

둘째, 성경의 주해적 접근을 통해서 이 씨의 교리를 비판하려는 것이다. 이 씨는 그의 책에서 성경(요한계시록)의 본문을 인용해 가며 자신만의 해설을 달아놓았다. 필자도 비슷한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이 씨가 설정한 성경 본문의 올바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능한 대로 많은 무게를 두려고 한다.  

   
   ▲ 자신을 신격화한 '보혜사 이만희'라는 책표지 글귀가 보인다.
연구의 한계

어느 누구의 사상을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또는 사상)이 아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는 비판하는 자나 비판을 받는 자 모두에게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법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명예훼손’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법의 테두리가 성경적 비판 활동을 제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활동을 돕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종교의 자유이며 그래서 이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비판의 글이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필자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한국교회의 필요가 필자의 의지에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이단 연구 활동을 통해서 현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단 사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글이 더욱 필요하다는 욕구도 작용했다. 또한 그 동안 이 분야에서 사역을 해 오면서 “그렇다면 그 성경본문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단 교리를 비판할 때 이단자들이 사용한 성경 본문의 올바른 해석에 대한 접근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복음을 미워한다는 것은 복음을 사랑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2000)이라는 논문을 작성한 바 있다. 이단교리 비판 대상자들이 이만희 씨를 포함해 4명(김풍일, 이답게(이장림), 이영수, 홍종효)이나 되었다. 그들도 각각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설집 등을 출판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교리가 경우에 따라 매우 비슷한 것도 있다는 점이다. ‘교주 우상화’ 등이 그것이다. 논문의 범위는 요한계시록 본문 1장뿐이었다. 물론 주제에 따라 다른 장도 간간히 다루기도 했다. 처음에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다루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었다. 원고량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이번 연구는 지난 번보다 한걸음만 더 나아간다는 자세를 가지려고 한다. 이번 연구는 위에 언급한 이만희 씨의 새로운 책 한 권에 보다 집중하려고 한다.

원고 집필 중 각주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각주에 해당하는 내용은 가능한 한 본문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다소 본문의 내용이 길어지고 복잡해질 수 있으나 오히려 그에 따른 장점을 살려보려고 하는 것이다. 참고도서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추가되리라고 본다. 훌륭한 학자들의 견해를 가능한 대로 많이 게재하려고 한다.

요한계시록의 주제

   
▲ 책 내지에도 '보혜사 이만희' 글귀가 선명히 보인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무엇인가? 모든 글은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본문 접근 이전에 이와 같은 총론적인 접근을 해보자. 이는 이 씨도 그러한 주제를 관심있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나 ‘복음’ 등을 흔히 떠올리게 된다. 이는 단지 요한계시록만의 주제가 아닌 성경 전체의 주제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도 바로 그 주제를 배우고 더욱 깊이 있게 알아가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 이 씨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그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이하 ‘이 씨의 책’) 앞부분에 있는 ‘요한계시록 총론’과 ‘요한계시록 개요’에서 먼저 이 씨의 견해를 살펴보자.

“주께서 명하신 대로 하나라도 가감하지 말아야 할 계시록의 말씀(계22:18~19)은 기록한 실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 어느 누구도 참뜻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성취 때가 되어 계시록의 예언이 홀연히 이루어졌으므로 필자는 그 실상을 직접 보고 성령에게 설명 들은 대로 낱낱이 증거하려 한다”(이 씨의 책 p.35).

이 씨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말로 요한계시록의 첫 문장을 기록했다.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등 우리의 귀에 익은 용어들을 사용해서 첫 문장을 기록했지만 그 내용의 무게는 예수님께서 무엇인가 말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데 있다. 이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길 의도하고 있다.

계속된 문장에서 이 씨는 그 의미를 설명한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계시’를 주셨지만 그 ‘실상’(요한계시록의 본뜻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필자 주)은 이제껏 감추어져 왔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실상이 이제껏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 어느 누구도 요한계시록의 올바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특별한 존재’의 필요성을 언급하려는 모양이다. 이 씨는 그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역시 이 씨는 곧바로 ‘필자는···’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요한계시록은 이제껏 아무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만이 그것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식이다.

이와 같은 자아도취식 성경 해석 접근은 결국 그의 총론 뒷부분에 가서는 심각한 비성경적인 구원론까지 만들어 내고 말았다. 직접 살펴보자.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한다”(p. 37).

   
   ▲ 이긴 자를 통해 구원이 됨을 설명하는 그림
즉, 요한계시록은 이제껏 해석할 사람이 없었고, 특별한 한 사람(이만희 씨는 자신이라고 주장)이 등장함으로 인해 그 해석의 문이 열렸으며,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한 마디로 이만희 씨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은 마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재미있는 것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특별한 존재’, 소위 ‘이긴 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만희 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명이 있다. 그들의 논리도 이 씨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단적 주장을 펼쳤던 박태선 씨의 분파인 이영수 씨(기독교에덴성회)의 주장을 한 번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큰 권능을 들고 이 땅에 나타난 ‘이긴 자’의 출현이 그렇다. ···계시록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류의 앞날에 대한 예언서이다. ···그것을 풀 때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시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은 뚜껑을 엎어놓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까지 인봉해 두었다갗 때가 되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 떼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내가 이상 중에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이 책을 풀어 나가려고 한다”(이영수, <계시록 강해> 서울: 집문당. p.6, 8, 16~17).

이만희 씨의 논리와 흡사하다. 복사본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하다.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김풍일 씨의 주장도 흥미롭다. 살펴보자.

“이와 같이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사명자 곧 이기는 자에게 예수님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다. ···이로써 하나님도 아니요 예수님도 아닌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자 곧 이기는 자가 만국을 다스리는 심판의 권세를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김풍일, <생명나무> 서울: 실로출판사, 1982. p.146).

공통점은 위 주장자들이 모두 자신만이 ‘이긴 자’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비슷하기까지도 했다. 소위 ‘이긴 자’라는 용어의 성경적인 의미는 차후 성경 본문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지금은 각 교주들이 그 용어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이긴 자’라는 용어가 각 교주들이 언급한 대로 ‘특정한 한 인물’을 가리킨다는 것이 맞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위의 교주들 중 한 사람만이 옳고 다 틀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는 위의 교주들 모두가 틀렸고 다른 존재가 있다는 말도 가능하다.

자신만이 ‘이긴 자’요 요한계시록을 풀 수 있는 독특한 인물이라는 이만희 씨의 주장은 그의 책 맨 뒷부분에 또다시 반복된다. 들어보자.

“지금까지 요약한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약속한 목자와 약속한 성전을 찾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약속한 목자를 10장에서는 책을 받아먹은 사도요한으로, 11장에서는 예수님의 대언자인 두 증인 중 하나로, 12장에서는 용과 싸워 이긴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 2장과 3장에서는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로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 동일한 인물로서 각 장에 기록한 사건에 따라 달리 칭했을 뿐이다"(pp.499~500).

이 씨가 주장하는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약속한 목자’와 ‘약속한 성전’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단체를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는 또한 요한계시록은 물론이고 신약성경(27권) 전체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그의 책에서 직접 들어보자.

“그러므로 구약 39권은 초림의 약속한 목자 예수님 한 분을 증거한 것이며 신약 27권은 재림의 약속한 목자 곧 이긴 자 한 사람을 증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림 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구약성경을 들어 자기 자신을 증거했듯(요 8:16~18) 재림 때 약속한 목자는 예수님의 영과 하나가 되어 신약 성경에 여러 모양으로 예언된 자기 자신을 증거한다”(pp.499~500).

결국 이만희 씨가 말하고자 하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바로 ‘이만희 자신’인 셈이다. 주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 글(또는 책)의 내용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의 책은 결국 이 씨 자신을 드러내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다른 교주들의 책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바 대로 ‘이만희 자신’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만희 자신의 모습
마크스트롬은 “복음이야말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열쇠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Markstrom, Symphony of Scripture, 오광만 역, <성경교향곡>, 서울: IVP, 1997. p.329). 그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높이시고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짐을 기록한 책임을 강조했다. 성경 책 중의 하나인 요한계시록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쓰였다는 말이다. 즉 성경의 어느 한 권도 다른 성경의 책들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 그 복음이 요한계시록의 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골즈워드도 같은 견해다. 그도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복음’으로 설명하고 있다(Graeme Goldsworthy, The Gospel in Revelation, 김영철 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서울: 성서유니온, 1996, p.17). 그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목표에 이르게 되는, 성경의 통일된 메시지에 비추어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포이쓰레스도 비슷하다. 그는 “계시록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그가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성에 도달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고 했다(Vern S. Poythress, The Returning King, 유상섭 옮김, <요한계시록 맥 잡기>, 크리스천출판사, 2002, p.38). 그는 책 중심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이상들이 그 예라고 강조했다.

다른 견해들도 있다. 권성수는 계 1:3의 구절을 들며 ‘복’을 강조했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15,17). 김서택은 선과 악의 ‘영적 전쟁’을 언급했다(김서택, 역사의 대 드라마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2004, 서문). 핸드릭슨은 그의 주석에서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교회의 승리’라고 말했다(William D Hendricks, Revelation, <요한계시록>, 서울: 아가페출판사, 1895, p,8). 윌콕과 콜만도 각각 ‘승리’를 강조했다(Michael Wilcock, I saw Heaven Opened, 정옥배 옮김, <요한계시록>, 두란노, 1989, p,19, Robert E. Coleman, Songs of Heaven, 석창훈 옮김, <천상의 노래>, 두란노, 2000, p,11).

이처럼 주석가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다. 복음, 복, 영적 전쟁, 승리 등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가들의 다양한 견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요한계시록만의 주제가 아닌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비록 난해한 성경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을 읽고 해석할 때에도 역시 그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정상적으로 읽고 해석할 때에 그 중심에 오늘날의 한 인물, 특히 이만희 씨의 이름이 등장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은 계속된 본문의 주해적 접근을 통해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도서

장운철,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2000.
 --------, ‘장막성전의 후예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1’ ,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2’,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김서택, 역사의 대 드라마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2004.
심창섭 외, 기독교의 이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98.
정행업,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논쟁,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최병규, 이단 진단과 대응, 은혜출판사,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이단사이비 종합 자료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04.
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 북, 1999.
Aune David, Revelation(WBC),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솔로몬, 2003.
Chuck Smith, Dateline Earth, 이요나 역, <계시록의 숨겨진 비밀>, 이레서원, 1995.
Graeme Goldsworthy, The Gospel in Revelation, 김영철 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1996
Markstrom, Symphony of Scripture, 오광만 역, <성경교향곡>, IVP, 1997
Michael Wilcock, I saw Heaven Opened, 정옥배 옮김, <요한계시록>, 두란노, 1989.
Robert E. Coleman, Songs of Heaven, 석창훈 옮김, <천상의 노래>, 두란노, 2000.
Vern S. Poythress, The Returning King, 유상섭 옮김, <요한계시록 맥 잡기>, 크리스천출판사, 2002.
William D Hendricks, Revelation, <요한계시록>, 아가페출판사,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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