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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었던 율법주의에서 벗어났습니다
2001년 12월 26일 (수) 16:53:06 상담소 webmaster@jesus114.net

   
  ▲ 간증하는 안증회 탈퇴자
크나큰 죄악의 사슬에 매여 있던 저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안증회에서 건짐을 받은 지 이제 한 달 남짓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정작 제 자신은 실감이 나질 않는군요. 이것이 꿈인지, 생신지...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절 위하여 준비해 놓으셨던 선물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전 이 선물로 말미암아 다시금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안증회 다닐 때에는 결단코 느낄 수 없었던 구원의 체험! 이 체험을 지금 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제 얼굴에 피어있는 환한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안증회에 있을 그 당시에는 시들어진 미소가 늘 제 얼굴을 대변하곤 했습니다.

안증회에 있었던 3년 반 동안의 세월은 저를 처참하게 망가뜨렸습니다. 저의 마음은 몇 차례의 전쟁을 치룬 것처럼 황폐해 졌었고, 저의 몸도 또한 추악한 행위로 소금에 절인 듯 더렵혀져 있었습니다.

1999년 6월의 어느 날 저녁...어느 사거리 길에서... 전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 얻는다, 유월절 지켜야만 구원 얻는다"  라는 저들의 사탕발림에 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를 다니며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있던 저였지만, 성경이란 책은 펼쳐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끼워 맞추어 가는 그들의 교리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침례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자신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그들에게 점점 동화되어갔고, 결국에는 그들처럼 오직 안상홍씨, 장길자씨 그리고 그 교회만을 위하여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어코 저의 눈에는 이들이 하나님이요, 이 교회는 지상에 유일한 참 진리 교회로 비추어 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Y2K 때 그들이 말했던 재앙이 오지 않았음을 직접 목격하였지만 저는 깨닫지 못하였고, 특히 주위 분들의 눈물 쏟은 그 귀한 만류도 제게는 사단 마귀의 행동들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는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은 정말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 몰래 예배를 드릴까? 어떻게 하면 부모님 몰래 그 쪽의 교리를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부모님 몰래 귀에 안 들어가게 끔 전도를 할 까?? 어느새 나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은 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적에게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어야만 했습니다. 교회에 관련된 일이면 무엇이든지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토해내었고, 얼굴의 표정도 속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가정에는 화목이 깨어 졌고, 예전의 행복에 겨운 웃음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3 수능을 앞 둔 약 한~두 달 사이의 어느 날 이었습니다. 교회 앞에 몇 시간 동안 서 계시던 어머니로 말미암아 결국 현장에서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라 전 3번째로 집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눈물 쏟는 저의 연극이 통하였으나 이번에는 어림없다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했죠. 왜냐하면 이제는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겠거니...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안증회 측에서는 아직은 학생의 신분이니까 어떻게든 다시 집에 들어가라 하였습니다. 

며칠 밤을 밖에서 지새우고, 어머니로부터 제 사정을 듣게된 선생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전 다시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들킬 새라 비수를 품은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 수능시험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고, 이미 놓쳐 버린 일 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빨리 천국 가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빠른 시일 내에 그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집을 떠나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철새가 때를 따라 날아 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수능시험의 결과가 나왔을 무렵, 부모님은 깊이 모를 한 숨을 쉬시며 중국으로 유학을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은 중국은 아직 종교의 자유가 없으므로 그 교회가 없으리라 생각하셨고, 또한 다른 나라에 가면 세상 보는 안목이 달라지겠거니 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마치 복권에나 당첨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었습니다. 아~하나님께서 나의 고난을 살펴 주셨구나, 드디어 길을 열어주셨구나...이렇듯 착각 속 허황된 감사를 연발하며 그 후 2002년 봄의 덜 익은 향내를 타고 거대한 중국 대륙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의 일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죠. 어긋난 자유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안씨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릇된 말씀 공부와 파멸로 인도하는 전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미 중국에는 26개 주에 안증회 단체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북경도 두 군데에서 약 60여 명의 성도가 조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활동 장소는 제가 사는 곳과 제법 멀었지만 한 주에 3~4번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왕복으로 약24km나 되는 거리였죠. 이는 그 당시 제가 얼마나 이단에 빠져 있었는가를 입증해 줍니다. 여하튼 저는 더욱더 큰 죄악의 나날들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중국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전 한국으로부터 눈물 먹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형민(가명)아~ 이제는 나도 지쳤구나 아버지같이 나도 널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그러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되먹지 못한 교회로 가거라...어머니께서는 제가 중국에서 전했었던 한 한국 분을 통해 아직까지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아시고 계셨었습니다.

직접 이런 말씀을 하시기까지 그 마음에 얼마나 많은 난도질을 당하셨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당시의 전 오히려 쾌재를 불렀습니다. 드디어 사단 마귀가 항복을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전 이런 죽어 마땅한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2003년도의 희망의 해가 떠오를 무렵, 전 다시 한국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비장한 각오를 비웃으시며, 홍해바다 갈림 같은 권능의 역사를 펼쳐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통해 저로 하여금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게끔 하셨습니다. 신앙심 깊은 여러 친지들에서부터 목사님까지...이런 많은 분들을 만나 뵈면 뵐수록 닫혀 있을 것만 같았던 저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면하여도 소귀에 경 읽기 격 이였던 것이 한 번 들어 나 보자 하는 식으로 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데에 그칠 뿐 제대로 된 확답은 얻지 못하였고, 그릇된 확신만 더해갔습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민성이를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안증회에 다니다 나온 이 친구의 열정적인 열변은 제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하자면 진용식 목사님은 정말 착한 분이시고, 감금, 폭행 절대 없어, 오직 말씀만 가지고 하셔, 내가 한 말 안 믿어지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만큼만은 믿으라는 거야...네가 후에 안증회가 이단인 것을 알아서 나올 때 받아 줄 분은 오직 너희 부모님 밖에 없고, 너 대신 칼 맞아 줄 수 있는 분도 너희 부모님 뿐이야... 저는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그래 그 악명 높은 진용식 목사 한 번 만나 보자! 예전 같았으면 진용식목사님 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만나려 했을 것을...전 그 자리에서 승낙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의 민성(가명)이의 열정적인 모습은 눈에 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민성이를 통해 역사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와 함께 그 의문의 진용식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그 의문은 하나, 둘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강금, 그리고 진용식 목사님의 생김새로부터 안증회가 이단이라는 것까지.. 하지만. 저는 풀어져 가는 의문을 다시금 묶으려 애를 썼습니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이건 아니야...아닐 거야...진용식 목사는 지금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있어...하지만 말씀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14절 말씀의 예수님 십자가 사건이 유월절 예비일에 발생했었다는 것을 통하여 성찬식은 유월절에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저들이 유월절 폐지되었다는 증거로서 내놓았던 자료도 그와 관련 없는 부활절 일자 문제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여러 이단들의 책자를 통하여 이단들의 교리는 한결같이 비슷하다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3일 밤낮을 배워 안증회가 이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 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제대로 마음에 와 닿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안증회가 이단이었다는 충격의 여파인 듯 싶습니다.

사실 제가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불과 얼마 전 구원론 테이프를 듣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심은 바로 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어야 함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구더기 같은 육신을 쓰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도 되었습니다. 그리나 그 숭고한 십자가의 길을 당신께서는 친히 걸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그 당시 죄인이 되셨고, 우리는 그로 인하여 지금 의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난 후 더불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먼저는 부모님의 이마에 깊게 패인 허다한 주름의 의미를 알았고, 저의 귀중한 삶을 얻었습니다. 목숨 걸고 지켜야만 구원받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 저의 마음은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불안과 긴장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안증회에서 나와 구원을 얻기까지 희생하신 여러분들 특히 저희 부모님과 진용식 목사님, 민성 군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절 벼랑 끝에서 은혜로 건져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속삭이십니다.

형민아...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점점 어두어져 가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거라! 전 대답합니다. 예!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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