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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신천지 탈퇴 간증)
2006년 11월 27일 (월) 16:51:54 상담소 webmaster@jesus114.net

 

신학원 과정에서는 지금이 마지막 때인 계시록의 시대이고 이 시대의 마지막 목자, 구원자인 이만희씨가 있는 시온산이 천국이기에 거기에 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는 2004년 7월경에 신천지 집단을 처음 접했고 2005년 12월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신천지에서 배우고 활동했던 김강건(가명)입니다. 신천지에서 14만4천이라는 제사장의 반열에 들어 영생하면서 살줄만 알았던 참으로 무지한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상록교회에서 상담을 받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간증을 통하여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모두 함께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짧지만 사건, 사고 많았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의 집안은 기독교 집안입니다. 저는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교회를 왜 가야 하는지 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단순히 천국가려고, 안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주일은 빠지지 않고 잘 지키는 어린이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업을 핑계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신앙은 무디어져 갔고 세상 친구들이랑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친구를 한명 붙여주셨습니다. 이 친구는 주일아침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하고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열정에, 꺼져버린 줄만 알았던 저의 신앙에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대학교를 타지로 혼자 다니게 되면서 주위에 저를 신앙적으로 붙들어줄 사람도 없고 대학교에서 자유를 무한히 누리면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 저의 이런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저는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는 생각으로 주위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교회를 가자고 하였으나 이 친구들은 주일날 오후까지 잠을 자기가 일쑤였기에 저는 다른 친구들에게, 이 친구는 신천지 신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어느 날 교회를 가자고 조르는 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막연히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 친구는 구절까지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자존하신 창조주 성령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깜작 놀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녀 성경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저의 자부심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고 지금은 교회를 무작정 가는 것보다 성경공부를 먼저하고 가는 게 낫다는 말에 바로 성경공부를 선교사라는 사람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가족이 신천지에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악구분, 성경개론 등 매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의 상태가 좋았던지 저는 2학기 때부터 신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과의 특성상 많은 과제와 학업, 운동 때문에 주 4일, 매 2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성경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는 것에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신학원 과정에서는 때 구분과 목자구분을 강조하는데 지금이 마지막 때인 계시록의 시대이고 이 시대의 마지막 목자, 구원자인 이만희씨가 있는 시온산이 천국이기에 거기에 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144,000이라는 제사장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마지막 보혜사인 이만희 씨를 믿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가 죽지 않는 신인합일, 즉 영생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신학원을 다닐 때에는 열매가 없으면 수료를 못한다는 말까지 나돌아 방학 때는 새벽기도로 시작해서 저녁때까지 전도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뛴 덕분인지 다행히 열매를 맺게 되었고 드디어 신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이라는 곳으로 유월을 하게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신천지 교리공부와 전도활동으로 보냈습니다. 새 학기가 되어서는 학과 전도를 위해 가짜 기독교 동아리라는 것을 만들어 10여명의 후배들을 출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과에 저희 동아리가 신천지라는 이단이라고 소문이 퍼지게 되어 더 이상 전도활동을 계속 할 수가 없었고 학과의 특성상 이단이라는 종교에 계속 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시게 되었고 저는 당연히 이젠 안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안 간다고 했지만 예배를 빠지는 것은 신천지에서는 커다란 죄이기에 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몰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버스를 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거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세 정거장 먼저 내리는 행동은 당연한 거였습니다.

이때는 마치 첩보영화의 주인공 같았습니다. 이때 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간표를 짤 때 수업을 전부 월, 화로 몰아 친구들한테 집에 간다고 하고 수요일부터 주일 저녁까지 신천지 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있듯이 저의 이러한 행각은 곧 발각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신천지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과 상록교회에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은 저에게 최악의 수를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바람 쐬러 나간다고 하고선 태어나서 그렇게나 빨리 달린 적이 없을 정도로,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뒤도 안보고 근처 신천지측 사람 집으로 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출 아닌 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집을 나와 보니 저의 이러한 행동은 가족과 학교 등 모든 것을 배신한 행위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행동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지금 돌아가면 나 때문에 저희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 위로 천대, 아래로 천대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내가 끝까지 참고 견뎌야 우리 집안이 산다는 생각과 주의 군사는 고난을 즐거이 받는다는 말씀에 따라 이러한 고난으로 주님이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지금 돌아가서 개종하면 나중에 역사가 이루어질 때 가족들이, 친구들이 ‘그때 좀만 참고 견뎠어야지, 우린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꿈에서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어 민족 대명절인 추석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진짜 이날 아침은 눈을 뜨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이 날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신천지 신학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시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쯤이면 포기하셨겠지 하고 너무 싶게 부모님의 사랑을 판단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저희 어머님께서는 시위 같은 험한 일을 하실 분이 아니었던 거였습니다. 결국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덕분에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2주라는 시간 끝에 목포행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단단히 혼이 날줄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집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안했습니다. 얼마나 못난 자식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고 화도 많이 나셨을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습니다.

2주 동안 무단결석을 해서 학교를 계속 다니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 교수님들과 친구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학교를 전과 다름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대전에 올라오셔서 학교를 같이 등하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생계를 뒤로 하고 대전에 올라오신 이유는 신천지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알기에 신천지에 가면 안 되었으나 이러한 부모님의 은혜 때문이라도 저의 신천지에 대한 신앙은 무너지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구원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밤마다 하나님께 신천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다행히 2학기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방학 때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상록교회에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신천지에서 배웠기에 어머님께서 상록교회를 가자고 했을 때 저는 정말 깜작 놀랐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상록교회를 정신병원, 감금, 폭행, 구타 등 각종 유언비어로 매도하기에 상록교회 가자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무섭습니다. 저는 끝까지 안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방학 초에는 안갈 수가 있었습니다. 신천지측에서도 제가 위험하다고 대전에서 목포라는 먼 거리를 심방 차 몇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몇 번의 만남에서 상록교회를 가자고 할 때 하는 말과 행동, 그럴 때에 대처법, 교육내용 등을 중점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1월 5일 날 이 날은 저희 가족이 방학 초부터 여행을 가기로 한 날입니다. 신천지측에서는 상록교회를 가자고 할 때 여행 가자거나 친척집에 가자고 하여 데리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짜로 친척들 집으로 여행가는 줄 알고 기분 좋게 따라갔습니다. 여행가기 전까지 상록교회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었고, 가족들이 저를 상록교회를 데리고 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정말 추석 때 못 본 친척들을 보러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걸리는 것은 하필이면 고모 댁이 안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안산에 도착하여 삼촌과 고모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갑자기 삼촌이 상록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뿔싸,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속았다는 마음에 화가 났습니다. 이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신천지에서 배운 바로는 끝까지 고집을 피우던지 이동 중에 뛰어내리던지 신천지 측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거나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내용증명서라는 것을 쓰고 왔기에 상담은 안 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저는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소중한 가족들을 친척들을 또다시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기에 정면 돌파를 하기로 작정하고 싸워서 이기자. 그리고 당당히 다니자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어차피 식구들을 전도해야 됐기에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생각으로 상록교회에 대한 편견 때문에 두렵고 떨렸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싹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심호흡을 크게 하고 상록교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상담일정에 첫날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둘째 날은 정말 몸과 마음으로 피곤해 가기가 싫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인정하기가 싫었고 지금 내가 아직 신천지교리가 체계적으로 뿌리가 내리지 못해 그러는 거라고 여러 번 마음속으로 되새겼지만 진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제 마음의 벽이 봄눈이 녹듯 사르르 녹아들었습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신천지교리가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릴 때 저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한 거란 말인가 그럼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만희 씨와 아이들에게 속고 있었단 말인가. 상담을 받은 후에는 정말로 잠이 들기가 힘들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저를 가르쳤던 강사님이나 전도사님 신천지 식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씩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배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원론을 들으면서 구원은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 예수님의 은혜라는 말씀으로 모든 중압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인하여 나의 죄가 속죄되었고, 복음을 듣고 믿어 인정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에 따라 구원을 받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담 후 지금까지 제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아직도 마치 하나님의 일인양 알지 못하여 거짓 것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이 제발 하나님의 구원의 서정에 있어 빼내심의 은혜를 알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저의 이러한 기도가 꼭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2006년 1월 5일은 제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날이 되었습니다. 신천지에 있을 때도 지켜주셨고 무엇을 주고도 못살 평생의 간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힘들게 상담해주신 진용식목사님, 진요섭목사님, 장영주전도사님, 그리고 저를 기꺼이 상담해주신 모든 분들,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는 동안 함께 해준 가족과 상록교회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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