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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랑이 저를 건졌습니다(신천지 탈퇴 간증)
2006년 12월 03일 (일) 16:20:05 상담소 webmaster@jesus114.net

"Liebe"

   
   ▲  대중 앞에서 간증을 하는 신천지 탈퇴자
2002년 6월을 시작으로 신천지 말씀을 배웠으며, 지난 2005년 5월에 신천지에서 나오게 되었고 7월 말경에 상담을 받고 다시금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생인 저는 84년도부터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족들 대부분이 신앙심이 깊었고 그 가운데서 배우고 자라게 된 저는 주일학교 때부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하루에 한번 꼭 교회로 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교회는 화목하고 가정적인 좋은 교회였고 목사님과의 교제가 잦은 편이여서 거의 집처럼 지내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전에 있는 C대학교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생활하면서 이모댁에서 지내게 되었고 교회도 당연히 이모가 다니는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좋았고 하나님께 열심을 보여드리고 싶어 주일학교, 성가대 등 많은 봉사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교회라는 공간에 차츰 적응은 했지만, 당시 같은 또래의 청년들과 사귀고 교재하면서 도시교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이 몸으로만 일하는 모습 그리고 봉사는 많이 하지만. 껍데기뿐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그 교회는 어릴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또래 끼리 뭉쳐있어서 처음 온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무척 많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것을 도시교회의 텃새라 생각했고 그런 모습에 많이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교회에 적응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많은 사랑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저와 비슷하게 생활하던 오래된 한 자매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자매와 마음이 많이 맞았고 하나님의 동역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으며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기말고사기간이 다가오면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복사를 하고 내려가던 중 캠퍼스 길가에서 설문을 하고 있는 2명의 자매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매들은 저에게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닌다고 말했고 그 즉시 설문지 한 장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그 설문지에는 신상을 파악하는 질문들과 성경을 일주일에 얼마나 읽는지를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다음카페의 “주님과 같이” 모임에서 나왔다고 말했고 그 때문에 저는 같은 크리스천이라고 믿고 망설임 없이 설문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성경을 많이 읽고 있어서 그들은 제가 체크한 목록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모임을 추천해 왔습니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도 많지 않고 지금 초기 멤버가 되는 거라고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저에게 강력하게 권유를 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동아리 활동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저는 수화동아리는 물론 기독교 동아리 에 가입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참여하기에는 힘들어지는 것 같아 갈등 중에 관두게 되었습니다. 활동적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후회가 계속되었고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찾아온 ‘큐티모임’은 저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자매들과 교재하게 되었고 기도제목을 말하면서 지금 교회에서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자매들은 따뜻하게 저를 위로해 주었고 그들과 친해질 수록 교회에서 텃새를 부리는 친구들과 언니들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설문을 통해 만난 자매들은 모두 저 보다 나이가 많았고 같은 학교 학생들이라 금방 친해 질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만나 묵상을 하게 되었는데... 평소 생각했던 나눔보다는 일방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니로부터 말씀을 배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번 말씀을 배우게 되면서 성경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알아야한다는 언니의 말에 혹하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주기도문과 무엇을 먹을까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 상반되는 것 같아 성경에서 사람들이 모순이 된다는 성구들을 통해 호기심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당시 품고 있었던 ‘어린이사역’의 비전을 위해서라도 꼭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식의 성경공부는 회를 거듭할 수 록 많은 호기심을 드러냈습니다.

하루는 언니가 저에게 한 장소를 소개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안식년을 맞아 강의해 주시는데 귀한 말씀을 배울 수 있다고 월,화,목,금 주4회로 진행되며 하나님이 성희를 위해서 준비하셨으니 꼭 그곳에 가서 배우자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언니를 100%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 없이 그곳에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언니가 저를 인도한 곳은 한 건물 2층에 있는 ‘대전신학원’이었습니다. 건물 안은 굉장히 깨끗했고 넓은 곳에 책상도 많이 놓여있었으며 그곳의 강사님과 전도사님도 친절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가 짝이 되어 함께 말씀을 배우게 되어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이모에게 말씀을 배우러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이모는 고개를 흔들며 거기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면서 간다고 저를 혼내며 목사님은 어느 신학대를 다니셨고 거기가 어디냐고 자세히 알아보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말을 듣고서는 무척 놀라서 제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간증을 경청하는 성도들
다음날 신학원에서 말씀을 듣고 나서 의심의 눈초리로 여기가 어디냐고 강사님은 어느 신학대를 나왔냐고 물었습니다. 저의 질문에 강사님은 하나님의 기준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소속이 아니라 오직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속을 믿는 것이라면 결국 사람을 보고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는 신학대는 “고신대”를 나오기는 했다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모에게는 그분이 ‘고신대’를 나왔다며 거짓말을 붙여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이모도 그다지 저를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배우는 동안 혹시 이곳이 이단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교회 전도사님과 상의해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다 배우고 나면 궁금증이 풀린다는 언니의 말에 계속 참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람들 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더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말씀을 다 배우는 6개월 동안 그곳에서 가르쳐준 잘못된 “거짓말교리”에 속아 넘어가 거짓말로 모든 것을 넘기게 되었고 그것이 모략인 줄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배운지 4달 정도 되었을 때 강사님부터 언니에 이르기 까지 제가 아는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시온산’을 찾아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교적부라는 것을 쓰고 2주후 저는 ‘시온산’이라고 하는 곳에 유월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교회로 옮기는 것을 그들은 유월이라 말했고 저는 미혹의 교리에 미혹되어 그곳의 말은 무엇이든 믿었습니다.

유월하게 되면서 교회에는 개척교회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평소 저를 믿고 아껴주시던 전도사님들은 모두 제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모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저의 뜻이 완강해서 결국 승낙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교회와 이모집을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 이름이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므낫세 맛디아지파’라고 했을 때 저는 그런 이단의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었고 이미 미혹의 교리에 미혹된 뒤라 그것이 진리라 믿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그런 성전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교회를 성전이라 불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 대전은 ‘맛디아지파’라고 천국12문 가운데 하나의 문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처음 그곳에서의 저의 열정과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료라는 것을 하기 전에 시험을 보는데 밤새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결국 청년회에서 가장 높은 성적으로 수료시험을 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부에서 실시하는 방중프로그램에서 지각, 결석을 한번도 하지 않아 거의 단독으로 개근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에 대한 열정도 커서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마음이 통했던 친구를 전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저와 친분이 두터웠고 제가 교회를 나올 당시 눈물을 보여서 저는 꼭 그 자매를 진리 없는 곳에서 빼내야겠다고 다짐해왔습니다. 워낙 친했기 때문에 그 자매 또한 저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자매를 수월하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와 친분이 두터웠던 여러 사람에게 접근해 신천지의 말씀을 소개하게 되었고 비슷한 방법으로 또 한명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 안에서의 생활은 늘 바빴습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생활이 바쁠수록 집에는 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시골에서 생활했던 그 믿음을 생각하시면서 저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전에 사시던 이모가 안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신천지 생활은 더 쉬워졌습니다. 신천지에서 생활하는 만3년 동안 가족의 눈을 속이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끔 가족들이 저를 만나러 오면 저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가족들이 걱정하곤 했습니다. 또한 1년 중 설날, 추석, 여름방학 때만 집에 갔는데 갈 때 마다 입술이 트고 말라있어 어머니는 자취생활이 많이 힘든가 보다며 걱정하시곤 했습니다. 일년 365일 가운데 집에 있는 시간은 1주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대전에서 집까지는 6시간이 걸렸고 너무 멀어서 어머니도 자주 오라는 말씀은 제가 힘들까봐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천지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이만희씨의 생일을 맞아 체육대회를 하는데 응원단을 하기도 했고, 어느 해 가을에는 선거운동을 하러 대전에서 대구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화로 선거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당시는 우리의 눈이 가려져있어 그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점령한 신천지동아리를 위해 학교 기물을 많이 훔쳐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위해 수업도 빠지고 급기야 전도단에 들어가기 위해 친구들과 휴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단에 함께 들어온 남자형제들은 전도단에서 ‘스피캄라고 하는 강의연습을 위해 근처 카이스트에 들어가 비싼 분필을 훔쳐오기 했습니다. 그에 뒤질새라 자매들은 학교칠판 밑에 있는 분필지우개까지 훔쳐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곳에서 있을수록 ‘도덕불감증’에 걸려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도단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전도에 있어서는 도우미역할만 하고 한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후 대학부 구역에서 ‘추수밭’이라 불리는 유형의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교회에 들어가 그곳의 임원이 되는 방법인데 제가 그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에서 세운 계획대로 우리는 순서에 따라 그 교회로 들어갔고 주말마다 ‘추수밭교육’을 받으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함께 들어간 구역식구들은 저와 함께 그 교회를 장악했습니다. 당시 우리 구역의 구역장님은 그 교회의 청년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 그해 곧 2003년 12월말 저는 부서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되어 소속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회 교사로 이동된 것입니다. 제가 맡은 반은 중학교1학년 여자반으로 24명의 아이들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엄마를 따라 교회에 왔고 바쁜 엄마의 생활과 신천지로 인한 가정의 불화로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의 임무는 그 아이들에게 엄마역할을 해주고 교육시키며 예배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주간보고서, 월례회보고서, 관리일지, 상담일지, 게시판제작, 설교준비, 동아리운영 뿐만 아니라 전도까지 모든 것이 시간이 갈수록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따라 학교공부는 늘 저의 관심밖에 있었습니다. 방학 때는 그보다 두 배나 되는 많은 일들이 찾아왔습니다. 중학생 방학프로그램(교육), 수련회, 교사방중프로그램, 계시통합교육 등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로봇처럼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믿음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쉽게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생활은 연속되었고 제가 바라던 천국과 제사장 왕권을 위해서는 뛰고 또 달려야만 했습니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사랑했던 예수님은 한때 사랑했던 존재로 잊혀져만 갔습니다.

2005년 3월 어머니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어디며 목사님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전도했던 자매가 신천지를 나가게 되었고 그 자매의 어머니가 이모에게 성희가 이단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렸고 그 얘기가 어머니귀와 시골목사님 귀까지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집안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 졌습니다. 학생회 부장님은 제가 핍박을 받을수록 신천지 일에 매진해야 하나님이 그 일을 해결해 주신다며 더욱 많은 일을 맡기셨습니다. 뛰고 또 달리다 못해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어머니와의 전화상의 다툼 그리고 저의 거짓말, 시골목사님의 방문과 설득 저는 더욱 지쳐갔습니다.

가족들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더 거칠게 만들었고 길었던 머리고 잘랐습니다. 그러나 지쳐만 갔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저의 지친모습을 본 부장님은 여기서 포기하면 3대가 멸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저를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린 제가 전도한 자매의 어머니에게 곧 오래 못 살 거라며 저주를 퍼 부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천지의 차가움에 몸을 떨게 되었고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지쳐있어 이미 저의 뇌리 속은 종교고 하나님이고 다 잊어버리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결국 어머니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안양에 있는 이모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이단에 빠진 사실을 알고 모두 기도하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모가 여섯 분이신데 대부분 신앙심이 깊으셔서 저를 이해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모가 읽어주는 성경말씀과 가끔 드리는 가정예배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또다시 대전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대전에 있는 자취방에 갔을 때가 새벽2시였는데 신천지 친구와 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할아버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오전에 찾아와 가족들이라며 집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신천지 식구들이 이미 자취방을 다녀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칼을 피부로 스친 듯 무서웠습니다. 그들이 말했던 모략이 흉기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이모집으로 도망 쳤습니다.

안양에는 어머니가 와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돌아온 저를 안고 눈물을 보이시며 “엄마가 가난해서 니가 거기 갔고 엄마가 교만해서 니가 그렇게 됐다”며 용서해 달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붙잡고 계속 우셨습니다. 이모들 역시 모두 울며 돌아와 줘서 고맙다며 하나님이 돌아오게 하실 줄 알았다고 모두 울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도 신천지에 왜갔냐고 묻지 않았고 저의 잘못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한다고 제가 지옥을 가게 되던지 천국을 가게 되던지 가족들이 다 함께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그 말에 굳어져 있던 저의 마음도 녹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가족들은 저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저를 가두지도 않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하게 해 주었습니다. 급기야 마음이 열린 저는 가족들과 가까운 교회도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도 교회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두 달 동안 저의 이 사실을 아는 모든 가족들이 저의 치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머니는 금식기도를 여러 차례하시며 말씀과 기도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처음 저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으면서도 두려움에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치료 ‘캄자만 나와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기도가 제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계속 머릿속을 돌고 도는 신천지 사상을 스스로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민하던 중 인터넷의 여러 포털사이트를 통해 신천지의 이단성에 대해 그리고 말씀의 오류를 스스로 연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치료 받으러 가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7월 말경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안산에 있는 상록교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경상도 사람들이라 모두 성격이 급해 저는 안중에도 없고 저를 뒤에 버려두고 교회로 향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미 제가 마음을 연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천지에서 초등학교도 안나오고 진짜 용이 시킨 목자라고 배웠던 ‘진용식 목사님’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에서 배웠던 이미지와는 달리 목사님은 동네 아저씨처럼 편했습니다.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도 말씀을 워낙 잘 듣다보니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논쟁하고 보니 신천지 말씀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종이의 한 부분만을 오려서 마치 그것이 전체인 듯이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비유와 상징에 대해서도 다시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배울수록 저주받을까봐 두려웠던 마음은 점점 소멸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희생한 그 말씀이 고작 이것이라니 저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상담 과정 중 또다시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구원론을 들으면서 구원은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고 예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저를 묶고 있던 올무를 풀어주었습니다. 제사장 왕권을 얻어 구원을 얻으려고 달리고 또 달리고 탈진했던 저는 그 사상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구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미혹했던 미혹의 교리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 더위를 날리는 시원한 산바람보다도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더 시원하게 했습니다.

신천지에 있으면서 피폐해진 정서를 저는 다시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재하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단에 가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서도 그 사상을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말씀으로 치료받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미혹의 구원관에 사로잡힌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시골교회의 목사님은 당신의 처형이 ‘안상홍증인회’에서 나온 후 그곳에 가진 않지만, 자폐아 출산을 비롯해 그 사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를 꼭 이단에서 빼내서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저희 가족들을 설득하셨고 만일 가족들이 치료를 받게 하지 않으면 당신이 목회를 포기하고서라도 성희를 치료받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저를 지켜준 가족들 그리고 상담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그 사랑이, 예수님의 그 사랑이 저를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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