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모음보기·이단문제제보
게시판·공지사항
최종편집 : 2019.3.5 화 11:35
인기검색어 : 신천지, 큰믿음교회
> 자료 > 이단회심간증
     
보혜사가 쓴 책이 오류 투성이..(신천지 탈퇴 간증)
2006년 11월 28일 (화) 15:46:26 상담소 webmaster@jesus114.net

 

저는 신천지교회라는 이단 종파에 미혹되어 약 2년여 동안 교주 이만희 씨를 구원자라고 믿고 신천지교회신도로 생활하다가 안산상록교회에서 이단 상담을 받고 다시 주님품으로 돌아온 나명선(가명)입니다. 저는 순천대학교 학생이었으나 재학 중에 신천지 교회에 미혹되어 가정의 불화로 가출하게 되고 학교도 휴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휴학생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믿음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한 교회를 섬기며 자랐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장로교회의 장로님이시고 어머니는 집사님이시며 저 역시 모태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매주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지만 말씀과 기도가 없었던 저의 습관적인 신앙생활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진학과 함께 갑작스레 주어진 주일학교 교사라는 직분이 제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전해줄 복음이 내안에 없었던 터라 말씀이 갈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주일 반복되는 예배와 토요일 성경공부말씀은 지식적으로만 받아들여질 뿐 제 안의 갈급함은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이제 막 신앙을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나는 예수님이 지금 오시면 구원 못 받을 것 같아. 지금은 내가 갖추고 있는 게 너무 없거든”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레이더망에 포착이 되었었나 봅니다. 그렇게 말씀에 갈급한 채로 주일학교 하계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그때에 선교원, 초, 중, 고를 함께 다녔고, 한 교회를 섬겼던 친구와 교제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미 신천지 신학원을 다니고 있었던 그 친구는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섬기지만 가라지인지 알곡인지 알 수 없으며, 만약 우리가 가라지이면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말씀으로 꽉꽉 채워진 알곡이 아니었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었기에 저는 분별력을 잃고 친구가 해주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이 모두 옳다고 긍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서 나보다 더 열심히 성경에 대해 공부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해진 친구가 부러웠고, 우리 교회 목사님보다 단시간에 그 친구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띄어준 그분과 그 단체가 더 신뢰가 갔습니다.

신천지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 교리를 소위 모략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들의 모략으로 전남대 기독교 동아리 선배라고 소개를 받은 신천지 교육자에게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순천이었기에 주말에 담양 집에 올라오면서 광주에서 친구와 함께 주 1회로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겨울방학 때는 알바를 하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 3회 공부를 꾸준히 지속하며, 신천지의 비유풀이 말씀에 세뇌되어 갔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서는 이렇게 재미있고 신기한 말씀을 알려주시지 않는걸까? 점점 다니던 교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고, 사탄의 계획대로 저의 생각들은 하나하나 개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던 중 예수님 때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했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는 교육자 언니의 말을 듣고 혹시 여기가 이단이 아닐까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신천지 비방 사이트에도 접속했었지만, 이미 비유풀이에 온 마음이 가 있었던 저는 비방 사이트에서 말하는 그런 이야기는 단지 비방일 뿐이고 참 진리가 있는 곳이 신천지이며 그곳에 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육자 언니의 모든 말을 그대로 믿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내가 전에 믿었던 하나님은 거짓 하나님이었고, 교주 이만희씨가 이 시대의 구원자이며, 이긴자, 보혜사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참 진리 가운데로 불러주셨다는 감사의 눈물과 함께 신천지 선교방을 시작한 지 6개월만인 2005년 2월 27일 신천지 교회로 자체 유월하게 되었습니다(유월이란, 일반 기성교회에서 신천지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유월과 동시에 신학원을 다니며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전도열매가 있어야만 신천지 총회본부에 있는 생명책이라는 교적부에 등록이 되었고, 그래야만 14만4천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14만4천에 들어가야만 제사장이 되어서 영생할 수 있다고 하여,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주기 때문에 전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유월하고 6개월 후 수료시험을 위한 수강을 듣던 중 저의 인도자의 신천지 자료가 부모님께 발각되었습니다.

부모님들끼리도 친분이 있었던 터라 저도 함께 의심을 받게 되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너무나 능청스럽게 그 친구가 신천지에 다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성경공부를 한 적은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3~4번 하다가 그만 뒀다고, 진짜 배신감이 든다는 식으로 말을 하며 작전대로 친구를 나쁘게 몰고 저는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말을 가족들은 믿어 주었고, 수료시험은 다음 기수로 미루고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방학이 끝날 때까지 집에 있으면서 순천에서 mp3파일로 보내주는 예배 말씀을 들으며 신천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신천지에서는 부모님을 확실히 속이기 위해 가짜 남자친구도 만들어 주었고, 개강과 함께 다시 신천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을 때에는 가짜 남자친구로 인해 친구들에게서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12월 25일 신천지 신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인도자가 저에게 쓴 수료 축하 편지를 통해서 또 다시 부모님께 신천지에 다닌다는 것을 들켜 버렸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모님들께서는 지난번처럼 어물쩡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저를 돌리려 하셨지만 신천지교리로 세뇌되어 있던 저는 돌이켜 질수 없었습니다.

저의 상황을 신천지측에 알리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신천지 구역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극적으로 연락을 취한 신천지 구역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청년회장님도 가출을 허락했으니 집을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학생들의 휴학이며 가출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외부사람들의 비방에 대한 눈가림이었을 뿐 내부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올 겨울 들어 가장 기온이 낮을 것이라고 보도했던 2006년 1월 6일 자정이 넘은 시간 부모님께 짧은 편지를 남기고 저는 그렇게 도망치듯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에는 택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광주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무작정 걸었습니다. 국도로 가면 내가 없는 것을 눈치 챈 부모님이 금방 좇아 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는 사람이 나를 볼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에 도로를 피해 논길로 걸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렇게 1시간 30분 가량을 무작정 걸었을 때 택시를 탈수 있었고, 그 길로 바로 순천으로 왔습니다. 나의 가출이 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이고 계획하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기가막히게, 예고없이 가출한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청년들은 새벽 3시가 되어가는 시간까지 잠들지 않고 있었고, 택시비와 제가 당분간 머무를 수 있도록 온가족이 신천지인 친구집까지 모두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집 나와 있을 땐 잘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항상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소수의 사람들과의 연락을 위해 제 손에 새 핸드폰을 쥐어 주었습니다. 그런 호의가 너무 죄송하게만 느껴졌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지만 그런 생각은 사탄이 집어넣는 생각이라며, 그 마음 버려야 한다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은 독해져만 갔고, 생업까지 포기하시고 하루를 멀다하고 교회를 찾아와 ‘가출한 딸을 내 놓으라’는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보다는 교회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하나님 일 하느라 너무 바쁘신 총무님과 청년회장님께는 더욱 죄송했습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 사도들의 고난을 나도 조금이라도 함께 한다는 생각에 날마다 일기를 쓰며 신사도행전을 쓴다고 생각했고, 날마다 테이프를 들으며 녹취하고 성구 외우고, 구역장들에게만 준다는 새벽만나 책을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내면적으로는 그렇게 연단되어 갔지만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천지교회에서 시키는대로 부모님께 혼돈을 주기위해 부산에 가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저를 인도했던 그 친구는 이미 벌교 대광교회에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저에게 부모님이 나를 폭행했다고 신고하고, 광주 YWCA 가정폭력상담소에 입소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신고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순천 총무나 청년회장을 통해서 주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피할 길이라 생각했고 그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천 시온교회 총무는 저를 자신의 대학교 후배라고 하고, 종교적인 문제로 부모님께 말도 못하게 심하게 맞고 추리닝 차림으로 새벽에 도망왔는데 있을 곳이 없다며 입소를 할 수 있냐고 거짓말로 상담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입소조건이 되지 않자 다음날 YWCA 가정폭력상담소에서 부모님을 만나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면 저도 대광교회로 교육을 다닐 것이 분명한데 제 믿음으로는 아직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만나 집으로 가는 도중 또다시 도망을 쳤고, 도피생활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타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같은 지파내의 지교회인 목포 시온교회로 가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목포에서 숨어 지낼 것으로 생각하고 가족들과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지만 하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좀처럼 핍박이 없는 목포 신천지 시온교회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딸을 찾으러 오는 일이 있었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순천 총무는 저를 다시 순천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유롭게 교회예배며 모임을 참석하라는 꿈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핍박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뻐한 것이 무색하게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이제 막 개강을 앞둔 광주역 신학원 앞에서 피켓시위를 시작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부인 광주 시온교회에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저를 빨리 집으로 들여보낼 것을 명령하였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1인 시위를 시작하신 지 2시간만에 집으로 들어갈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순천 담임강사는 제가 안산상록교회까지 갈 상황을 생각해 진용식 목사 주장과 인터넷 비방에 대한 반증이라는 초록색 책자를 주며 몇 번이고 읽어보고 또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혼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주장을 누가 믿나’라고 생각하며 진목사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생겼습니다.

하지만 순천노회에서 나온 신천지에 대한 책자에는 나와 같이 가출을 하고 부모님 속을 썩였다는 신천지 청년들의 사례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쓰여 있었고, 순천 신천지를 다니다가 개종한 자매의 간증 내용은 나의 상황, 심정과 너무나도 똑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 저는 핸드폰만은 숨겨가지고 들어가 들키지 않을 것을 교육받았고, 나중에 부모님에 의해 집에 감금되어 있으니 도와 달라는 문자 하나면 경찰을 대동해서 다시 나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다시 가출하지 못하도록 광주 신천지 총무에게서 명선이가 다시 한번 가출할 경우 제명처리를 해줄 것을 각서로 받아 내셨고, 신천지측에서도 저를 감금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 받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부모님은 두달만에 집에 돌아온 탕자를 꼭 안아 주시며 사랑으로 반겨 주었지만, 너무나 고생하셔서 비쩍 말라 야위어 버린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부모님이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고만 생각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지치고 약해질 때마다 고난에 대한 말씀과 찬양으로 힘을 얻었고, 성경책 하나로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복음방 교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답답했지만, 내가 여기서 지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영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역사가 이루어진 후에 ‘명선아 너가 그때 그렇게 잘 참아주어서 이런 영광을 누리는구나’ 라고 눈물 흘리며 고마워 할 가족들을 상상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계시록을 22장까지 다 외우고 나면 이 핍박이 끝날 것이다라는 자기 암시를 걸고서 계시록 전장을 외우기 시작했고, 계시록 15장을 외우고 있던 어느날 낯선 기자가 집을 방문했습니다. 계획대로 저의 구조요청 문자를 받고 신천지측 사람들과 경찰들이 함께 왔던 것이었고, 저는 가정에서 해결할 문제라며 나를 그대로 집에 있게 하고 그냥 가려고 하는 경찰관을 붙잡아 부모님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여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도덕적인 판단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저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고 핸드폰도 빼앗긴 채 그대로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천지측에서는 일주일 뒤 제가 문자를 보낸 적도 없는데, 명선이 앞으로 연락이 없을 경우 다시 감금된 줄 알고 도와달라는 문자를 보냈었다며 또 다시 경찰을 대동해 집으로 찾아오자 이 사람들이 또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신 부모님께서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당분간 집을 떠나있기로 하시고 학교 간 동생들에게는 말도 없이 저와 저를 이단에서 빼내기 위한 그 이유 하나만으로 휴학까지 한 둘째 언니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저는 안산 상록교회를 의심하게 되었지만 부모님과의 신뢰회복을 약속했기에 다시 도망칠 수 없었고,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절차라 생각하고 모르는 척 부모님과 언니들의 연기에 속아 주었습니다.

예상대로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고, 아빠는 안산상록교회에 가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가족들 전도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드디어 가족들을 이기고 자유롭게 신천지 신앙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하며, 한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2006년 3월 23일 안산상록교회에서 이단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담 시작과 동시에 제 마음은 더욱 강퍅해져 내가 말을 할 경우 내 정보가 상담하시는 전도사님께 읽힐 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열지 않았고, 하나하나 밝혀지는 신천지의 잘못된 말씀에 당황은 했지만, 절대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신천지의 잘못된 교리를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한 자매를 보고서 나는 흔들리지 말고 3일만 버텨내자 하며 마음을 굳혔고, 전도사님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첫날 상담을 끝내고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상담 중 들었던 말씀에 나름대로의 엉터리 반증을 하며, 새벽 3시 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치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날, 마음 문을 열고 들으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마음보다는 입이 먼저 열렸고, 전도사님께 대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듣고는 있었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영벌의 두려움과 함께 신천지가 틀리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틀린 것을 말해주어도 받아들여지지도, 인정이 되지도 앉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듣는다는 것은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신천지에서 듣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몸에 익숙했었기에 듣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미혹되어 버릴까봐 두려워 비겁하게 마음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했을 때, 신천지의 잘못된 교리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인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통달했다는 보혜사가 쓴 책은 오류 투성이었고, 신천지는 말씀대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순전히 거짓말로 이루어진 곳이었으며, 신천지 집단의 교주 이만희 씨는 예수님께서 피흘리심으로 죄 값을 대속해 주신 많은 영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허술한 교리와 내 인생, 내 가족들을 바꾸려 했다는 게 너무 창피해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날 저는 온전히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들었을 때 구원은 나의 행위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을 유일한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고, 상담받는 내내 애써 지키려 했던 신천지 교리들을 모두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구원받은 사람들과의 풍성한 교제 속에 그동안의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었고, 신천지에서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전도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지고, 너무나 평안한 맘으로 하루하루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잊어버리고 잠시 하나님 곁을 떠났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2000년 전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동안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으며, 앞으로도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실 것을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구속하신 예수그리스도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부족한 제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더욱 더 사랑해 준 가족들에게도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제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상담해 주신 진용식 목사님과 장영주 전도사님, 이단상담팀, 구원론을 설교해 주신 진요섭 목사님과 저를 친딸처럼 생각하고 부모님과 한마음이 되어 도와 주셨던 조남운 집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우리도 너는 정말 포기 못하겠다’고 하시며 부모님께 힘을 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셨던 고서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기도해주신 상록교회 성도님들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 그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소의 다른자료 보기  
ⓒ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http://www.jesus114.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소개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표전화 : 0502-838-1452 | FAX : 031-475-9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고운
Copyright 2009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 협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jesus114.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