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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수 목사의 4단계 회개, 무엇이 문제인가
1998년 01월 01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신영균 목사(경주제삼교회 담임)

들어가는 말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의 교주나 신학적, 교리적인 비판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4)는 말씀과 야고보의 교훈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1-12)는 말씀 등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성경과 교회의 수호를 위해 잘못된 교리나 신학을 비판하는 것을 금한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으로 남을 헤치는 비판이나 비방을 하지 말라는 것임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는 말씀 대로 교리문제나 신앙문제라면 정확하게 비판해서 옥석을 가리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러한 취지에서 요즘 물의를 빚고 있는 박무수 목사의 회개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해 본다.

직통계시 문제

직통계시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신학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유치한 논쟁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박무수 목사는 직통계시파에 속할 정도로 직통계시를 내세운다. 박목사는 추운 겨울날 내복을 입지 말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기도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묵상하던 중 요한복음 19:23에 이르러서는 계속해서 같은 본문만 묵상하게 되었는데, 그 때 4단계 회개를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박목사의 '4단계 회개'의 변증서 <새로운 만남>의 저자 나균용은 "박목사가 직통계시를 강조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비판적인 마음을 가지고 들으면 신비주의자처럼 느낄 것이고, 좋은 마음으로 들으면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 그리고 직접계시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성령사역 종료론을 주장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신약성경이 완료됨과 함께 완료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성령의 역사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고 하며 직통계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뒤집어씌우기식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의 종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박목사식의 직통계시가 종료되었다는 비판이다. 만약 박목사식의 직통계시가 현존한다면 그것이 박목사 복음이며, 또 하나의 성경인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계시론을 논거하기가 쑥스럽지만 "직통계시를 객관화하면 신비파가 되고, 객관적 계시를 주관화하면 신신학"이 된다.

박목사가 직통계시를 성경화하지 않았다고 애써 변명하지만, 그는 직통계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으로, 말로 성경화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성경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관적인 계시와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계시를 자랑, 전파, 강조하여 객관화시킴으로 자신을 신령시하고,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성경을 불완전한 계시로 전락시키고, 성경 중심의 신앙관이 흐려지게 하는 성령모독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자의적인 성경해석

성경을 성경되게 하고, 말씀의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자세는 말씀의 종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인 자세이다. 그래서 말씀을 사사로이 풀이하고 해석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1:20에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 하였고, 베드로후서 3:16에는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하였다.

박목사가 4단계 회개론을 주장하면서 근거로 삼는 성경은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 19:23)이다. 

그는 옷은 수치를 가리는 것이라는 착상과 유대인이 옷을 찢고 회개하는 모습을 연상하여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을 나눠"라는 구절을 "4단계 회개"라는 식으로 해석했으니, 이것이 곧 비약이고, 자기도취식 해석이다. 말씀의 봉사자로서의 해석이라기보다 말씀의 지배자로서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같은 구절 속의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고 한 말씀의 해석은 왜 그만두었는가? 앞의 식으로 해석하자면 "통 옷이니까 통 회개론"이 나와야 되고 겉옷, 속옷이 있었으니 겉회개론, 속회개론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라고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 '4단계' 회개가 그렇게 중요한 복음이라면 왜 예수님의 겉옷에다가 그 교리의 비밀을 숨겨 두셨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죄수의 옷은 벗겨 형틀에 달게 되었고, 사형수의 옷과 소지품은 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이 가져가는 것이 통례였기에 네 깃을 호아서 만든 겉옷은 4명의 군인이 나눠 가졌고, 속옷은 통 옷이라서 제비 뽑아 가졌던 것이다. 시편 22:18이 응한 말씀이고, 십자가형틀의 잔인함과 고난의 극심함에 관한 말씀이다. 만약 4단계 회개론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 22:18)라는 예언을 "내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하지 아니하셨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4단계 회개의 문제

박목사의 4단계 회개론을 개괄하자면 이렇다. 첫째 단계는 죄를 깨닫는 단계로서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히 10:22)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둘째 단계는 제단 뿔에 새겨진 나의 죄를 지우는 단계인데,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을 근거하여 인간의 죄가 기록된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먼저 제단 뿔에 기록된 죄를 지우는 것인데 지우는 방법은 레 16장의 제사법칙처럼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 귀퉁이에 바르고 일곱 번 뿌려 정결케 하여야 한다. 실제 기도할 때 눈을 감고 십자가를 그리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두 손 가득히 받아서 피를 속죄소 동편으로 일곱 번 뿌리는 흉내를 하게 한다.  셋째 단계는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죄를 지우는 단계인데, 3단계가 지나야 예수의 3일만의 부활을 체험한다고 주장한다. 죄를 씻는 것은 둘째 단계요, 예수의 이름으로 고치는 것은 셋째 단계라고 한다. 넷째 단계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단계로서 감사의 예물은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4단계 회개론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부분을 전체로 본 치우친 주장이다. 결코 회개의 필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 만능주의, 회개 유일주의에 빠진 4단계 회개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며, 그것은 마치 숲 속에서 한 그루의 나무만 붙잡고 있는 듯하며, 입학원서만 붙잡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고 졸업장까지 받으려는 느낌이고,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4단계 회개만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초성경적 회개, 비성경적 회개의 늪으로 회개론이 탈선했고, 상대적으로 회개 이외의 구원의 진리 특히 은총론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둘째, 인위적인 구원론이다. 박목사는 4단계 회개를 통해서만 구원받고, 특히 예수의 3일만의 부활을 회개의 단계로 끼워 맞춰 3단계 회개 이상을 지나야 거듭나고 부활을 체험한다는 식의 구원론은 은혜로 구원 얻는 진리를 짓밟는 인위적인 구원론이다.

셋째, 율법적인 발상이다. 4단계 회개론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를 구분하지 못한 나머지 반복적 회개를 구원과 연결시켜 구원파와 정반대의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4단계 회개론은 은혜에 기초한 구원이 아닌 회개를 통한 구원으로 율법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고 하였고,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친히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넷째, 감사헌금에 대한 문제다. 4단계 회개의 완성이 감사헌금이란 주장과 감사헌금을 통한 축복 운운하는 것은 얼핏 들으면 속기 쉬운 주장이다. 내 죄을 완전히 사함받았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반드시 감사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마귀가 예물을 바치는 것을 가로막는 유혹을 하는데, 이것을 이겨야 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만남>이란 책을 통해 박목사의 4단계 회개론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감사헌금을 회개의 마지막 단계에 포함시켜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감사헌금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감사헌금을 회개의 완성 내지, 필수적인 요소로 삼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갚아 주심을 바라고 드려서는 안 되고 순수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만 드려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기뻐하시게만 해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를 내려 주신다"고 하며, 하나님께 바치면 최소한 30배, 60배, 100배의 갚음을 받게 된다고 하였고, 심지어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물은 자기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요, 장차 거두기 위하여 씨를 뿌리는 것이다"고 하며 기복주의적인 감사헌금을 부추기고 있어 바른 헌금관에서 이탈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박목사는 설교 테이프에서 4단계 회개의 마지막 단계인 감사헌금을 레위기 16:10의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는 말씀과 연결시켜 "염소는 공짜가 없다. 감사헌금을 해야 온전한 회개가 된다. 하나님이 같이하는 사람은 4단계 회개를 다한 사람이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또 하나의 억지 해석이며, 헌금강요의 수단으로 성경말씀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귀신론 문제

박목사의 또 하나의 문제는 귀신론의 문제이다. <새로운 만남>에서 그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을 보면, 베뢰아 귀신론과의 구별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비슷한 귀신론을 자의적인 성경해석으로 끼어 맞추어 놓았을 뿐이다. 베뢰아파는 귀신을 쫒아내는 과정에서 쫒겨나간 귀신들의 고백만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죽은 자의 영혼들, 불신자의 혼령들을 귀신이라고 한다며 비판해 놓고, 박목사 계열은 조상의 유전을 근거로 조상귀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나타난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는 말씀과 시편 106장 28절의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귀신=죽은 자=마귀』라는 공식을 도출해 내었다.

그리고 고전 10:20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에 적용하여 조상이 귀신이라는 논리이다. 문화권이 다른 상황을 이해하며 성경의 본 뜻을 찾지 않고 무조건 동일시하여 짜맞추기식 해석으로 '조상귀신' 논리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뵈뢰아 귀신론과의 구별을 위해서인지 귀신은 죽은 자의 혼령이 아니라 "죽은 자의 혼령을 가장한 사탄"이라고 주장한다.

그밖의 문제들

그밖에 삼위일체론의 문제, 삼사신학교의 문제, 인사법의 문제, 상징조작적인 기도자세 등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기에는 지면상의 문제가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삼사신학교'의 이름은 삼위일체와 4단계 회개에서 따온 말인데, 매주 금요일 철야 기도회 후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강의로 처음에는 잠을 안 자는 훈련부터 한다고 한다. 박목사 혼자서 강의하는 삼사신학교는 예수님처럼 3년 반 동안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목사는 예배 도중에 신도를 책망하여 집사직을 파면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고 자랑하며 기성교회의 민주적인 교회제도를 비판하고 있으나 이러한 방법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것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대한 건전한 교회, 건전한 목회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현대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에 있어,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나아가 섬김의 리더십(servant readership)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적이라기보다 겸손을 통한 섬김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단계 회개론자들의 인사법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가 되세요! 최고 복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4단계 회개를 통해 즉 마지막 감사헌금의 단계까지 다 마쳐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받으라는 의미로 기복적인 의식을 표출화한 인사법이다.

또한 그들의 기도 모습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턱 밑 가슴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들의 기도의 자세는 항상 같은 모습이다. 이것은 귀신들린 어느 신자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자세를 물었더니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더라는 것이다.

그밖에도 박목사의 보편타당성을 잃은 주장들을 보면 "자신은 동방의 독수리요, 그 추종자들은 동방의 왕들이다(사 46:11, 계 16:12)", "4단계 회개를 하다가 중단하면 지옥에 간다", "칼빈의 예정론은 성경적이지 않다", "신학교육은 필요가 없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할 수 없다. 예수는 손등이고 그리스도는 손바닥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예수만 말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손등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4단계 회개의 깊은 단계에 이르면 부부 관계를 초월하여 육체의 모든 욕망을 이기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 등이다.

나가는 말

박목사의 주된 관심은 회개이다. 기성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에게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함을 부인할 자 아무도 없으며, 또 구원에 있어서 회개의 필요성을 부인할 자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회개가 우리의 회개로 확산되어 우리 사회는 회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목사의 4단계 회개론은 자신의 생각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짜맞추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내용상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신학적이고, 성서적인 보편 타당성을 잃어버린 그릇된 주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4단계 회개가 유일주의, 만능주의의 늪에 빠져 있어 오히려 회개운동의 거침돌이 된다. 박목사식 회개운동이 아닌 진정한 회개운동이 일어나 마음을 찢고 통회자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또한 박목사 자신도 4단계 회개운동의 오류를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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